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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독서법

[책 요약] 단단한 독서 (일부 요약)

by For Your Life 2020.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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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Émile Faguet. 1912. L’Art de Lire (국역: 단단한 독서, 2014, 유유).

 

단단한 독서
국내도서
저자 : 에밀 파게(Emile Faguet) / 최성웅역
출판 : 도서출판유유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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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무조건 느리고 반복해서 읽는 것이 답은 아니지만, 어떤 분야에 대해 심도 있게 알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정을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는 책.

 

머리말: 느릿느릿 거듭거듭 읽기 위하여

책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책을 읽기 위한 기술, 즉 독서의 기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 읽기에는 세 가지 축이 있다. 작가, 독자, 중재자인 비평가.

비평가는 하나의 관점을 지니고서 작가를 읽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비평가의 글은 작가에게 들어가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비평가란 다름 아닌 책 읽는 법을 아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가르친다.”

비평가는 독자에게 작품 전체의 흐름을 이해시키거나 새로운 방식에 따라 거듭하여 읽기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유한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점을 생각해 보기’를, 이미 책을 읽었다면 ‘이 점에 관해 생각해 보았는지’를 묻는다. 독서 가이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어려운 고전의 경우에는 원문을 바로 읽기보다는 비평이나 해설, 관련 분야의 개론서를 먼저 접할 필요가 있다.

 

1. 느리게 읽기

책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우선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책에서 배움을 구하거나 책을 비평할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책은 천천히 읽어 나가야 한다.

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책에서 얻은 사상이 자신이 만들어 낸 생각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를 자문하면서 천천히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독자는 계속해서 ‘이것이 맞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물론 느린 독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책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우리가 읽어야 할 필요가 조금도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원칙하에 다양한 작품에 따른 서로 다른 ‘독서의 기술들’이 존재하게 된다.

 

2. 생각을 담은 책 읽기

생각을 담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비교와 대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상가의 생각은 한 번에 설명할 수 없으며, 생각을 개진해 나갈수록 점점 보충되고 분명해지기 때문에 책 전체를 읽지 않고서는 그 책[의 내용]을 소유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지속적인 비교와 대조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의 정신은 사상가의 가장 보편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생각의] 지도를 그리게 된다. 대개 보편적 생각은 작가가 지적 탐구를 계속 벌이는 와중에 얻는 것으로서, 수많은 개별적 생각이 요약‧귀결되는 지점일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다시 수많은 개별적인 생각을 생산하고 창조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위대한 사상가에게 모순이란 풍경이 충돌하는 장소다. 모순은 [독자를] 집중하고 들뜨게 하며, 다시 활기를 북돋고 사유에 변신을 가져오는 것으로, 그 풍요로움에는 끝이 없다. 나는 작가가 모순으로 가득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모순을 찾아내기를 바랄 따름이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개인에게 끼치는 사회의 영향을 저주하면서 개인이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한 작품―󰡔사회계약론󰡕―에서 그는 개인을 사회에 희생시키고 단호한 어조로 개인이 사회에 귀속하기를 원했다. 이것은 분명 모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들은 이 부분에서 조금의 모순도 찾지 않으며, 매우 능숙하게 󰡔사회계약론󰡕을 루소의 다른 모든 저서와 함께 놓는다.

독자는 처음 모순을 찾아낼 때 즐거움을 느끼고, 다음으로는 그 모순을 해결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리는 사상가들을 읽으면서 우선 모순을 짚어 내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이후 많은 모순을 들춰낸다. 그리고 너무 많이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모순을 해결해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모순을 해결하는 데 익숙해지면, 결국에는 모순 해결 자체에 목적을 두고 그 수를 늘리기까지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한쪽 극단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토론하는 즐거움이 이해하는 즐거움을 깨트리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고 무작정 화해시키려는 즐거움에만 빠져서도 안 된다. 서로 다른 관점과 입장을 고려해 볼 수 있어야 하며, 생각하는 힘이나 논리적 엄격함에 빠져들려는 만큼 그로부터 자신을 지켜 낼 수 있어야 한다. 작가를 이겨 내기 위해서는 작가를 자기 자신과 맞붙이고 또한 작가 자신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

 

진정한 지적 행복이란 바로 정신적 자유다. 지적 작업에서 필요한 것은 포기도 승리도 아니다. 포기하면 언제나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고, 승리는 언제나 공허한 법이다. 한 사상가와 마주해서 자신을 알려면 언제나 정중하면서도 너그러울 수 있어야 한다.

 

 

3. 감정을 담은 책 읽기

조금은 빠르게 읽어도 좋을 책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 영혼에서 나오는 감정을 재료로 삼는 작가의 책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정도를 벗어난 빠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담은 책과 관련한]  형식적 측면에서 깊게 고민해야 할 뿐 아니라, 토론해야 할 필요마저 있기에 결국 조급함과는 상반된다.

그러나 이 독서가 ‘자신을 내던지면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작가는 감정을 그림으로써 우리에게 그 감정을 불어넣고자 한다. 철학자가 생각의 씨를 뿌리듯, 감정을 다루는 작가는 감정의 씨를 뿌린다. 무엇보다 작가는 우리가 감동하기를 바란다. 

 

이 감동에 이르도록 자신을 내맡기면,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에게 속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허구가 우리를 사로잡는 이와 같은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일종의 도취(陶醉)로, 개개인의 특성을 잃게 하는 동시에 증가시킨다. 우리는 최면에 걸려 개개인의 특성을 잃지만, ‘빌려 온 삶’에서 더욱 풍요롭게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고전 작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에게 영속적인 무언가가 있으며, 매우 보편적인 그들의 모습이 최종적인 형태로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별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모든 시대에 통용된다. 즉, 시대를 막론하고 이성과 상상력, 감수성과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전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사람은 자기 시대의 특별한 상상력이나 감수성, 그 시대의 기호나 논리에 파묻혀 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고전 작품의 독자는 당대에 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낯선 상태로 머무를 수 있다. 만약 노쇠하지 않는 게 행복이라 할 수 있다면, 그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하며 단 한 번도 혼자 있는 법이 없다.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현존과 영원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서 영원을 선택했고, 그 몫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4. 연극 작품 읽기(생략)

5. 시인 읽기(생략)

6. 난해한 작가 읽기(생략)

7. 조악한 작가 읽기(생략)

 

8. 독서의 적

내가 말하는 독서의 적은 단순히 독서를 방해하는 것들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방해하는 것들 중에서 과학, 실천하는 삶, 운동 등 대부분은 매우 훌륭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고대인들이 umbratilis vita(그늘진 삶, 숨겨진 삶)라고 불렀던 삶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제 ‘그늘에’ 틀어박혀 며칠이고 책 한 권에만 할애할 시간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부분별로만 끊어서 책을 읽고 있기에,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더는 온전히 읽었다 말할 수 없다. 책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할 독서의 주요한 적은 올바른 책 읽기를 방해하는, 즉 독서가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것임을 알지 못하게 하는 일련의 습관이나 경향, 버릇이다. 이는 바로 자기애나 소심함, 몰입이나 비판적 정신이다. 

 

그렇다면 라브뤼예르가 말하는 ‘비판적 정신’은 무엇을 말하는가? 당대에 ‘비판적 정신’은 대개 비방하는 정신, 적어도 불만스러운[불만족한] 정신을 뜻했다. 그와 같은 의미로 단어를 사용했다면 그는 옳다. 아름다운 대상을 만끽하기를 방해하는 게 바로 조악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욕망, 조롱하고자 하는 본능임은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9. 비평가 읽기(생략)

10. 거듭하여 읽기(생략)

 

 

맺음말: 독서란 다른 사람과 함께 생각하는 것

책 읽는 법이란 약간의 도움을 얻어 생각하는 법을 말한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에도 생각하는 법과 같은 일반적 법칙이 있다. 천천히 생각해야 하며, 천천히 읽어야 한다. 생각할 때는 신중함을 기해 너무 빨리 자기 생각을 개진하지 말 것이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읽을 때는 신중함을 기해 작가에게 줄곧 반박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우선 개진되는 작가의 생각에 자신을 내던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토론을 위해 되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하기란 단연코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잠정적으로 작가를 신임하고, 이후에는 작가를 잘 이해했다는 확신이 서고 나서야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때가 오면 우리 정신에 떠오르는 가능한 모든 반박을 펼치고, 신중하게 거기에 작가가 대답할 수 있는지, 대답한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독서란 다른 사람과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생각해보고, 그에 동조하는지 또는 반대하는지와 같이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생각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친구 책에게도 결점이 있다는 것을 숨기지는 말자. 흔히 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앞에서 그가 자주 속인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또, 사람들은 가장 조악한 책에서도 좋은 것을 뽑아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말이 전적으로 맞는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우리는 어리석은 책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책을 읽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이 언제나 우리에게 은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책 읽기는 열정으로 변화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과도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혜로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독서에 아무런 위험도 없다면, 굳이 책을 읽는 데 [방]법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점만 주의하면 독서는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 중 하나다. 독서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독서가 우리를 지혜로 이끌기 때문이다. 라틴어 legere는 ‘읽다’(lire)와 ‘거두다’(cueillir)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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