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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독서법

[책 요약] 인문계 텍스트의 독서론

by For Your Life 2020.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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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편. 2006. 『읽기』. 서강대학교출판부.

 

[1부]

1. 읽기란 무엇인가

 

출전: 박이문. 2003. "인문계 텍스트의 독서론". 『문학과 언어의 꿈』. 민음사.

문학과 언어의 꿈
국내도서
저자 : 박이문
출판 : 민음사 200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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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텍스트의 존재양식과 그 분류

 

독서의 대상은 텍스트다. 텍스트란 통일된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언어의 최소 구성단위이며, 독서의 목적은 그러한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하는 행위다. 따라서 독서의 문제는 한 텍스트의 언어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

 

텍스트는 그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으나, 독서 행위의 구조적 기본 논리는 모든 텍스트에 해당한다. 즉, 독서의 일반적 문제는 독서 행위의 일반적 구조를 분석하고 밝혀내는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텍스트를 관례적으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인문학, 사회과학)으로 나누어 왔다. 

 

인문계 텍스트 독서 행위가 내포하고 있는 논리적 구조의 특수성을 발견하여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텍스트가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대해 먼저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 분야의 전형적(典型的)인 텍스트에 대한 검토(檢討)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엄격한 의미에서 한 텍스트가 어느 분야에 속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검토가 필요하다.

 

인문학(Humanities/Human sciences)의 핵심적인 학문으로는 철학, 신학, 역사, 문학, 예술 등을 들 수 있다. 역사학은 사회과학에 속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문학과 예술은 굳이 인문학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며, 예술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결국 인문학에는 철학만이 잔류하게 된다.

 

 문학과 예술을 구분하는 것은 예술에 속하는 미술, 조각, 무용, 음악 등의 활동이 非문자적인 반면, 문학은 문자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문자로 구성된 텍스트만을 예로 들 것이다.

 

2. 인문계 텍스트의 특성

 

인문학에 속한다 하더라도 철학, 역사, 문학 텍스트는 구조적인 차이를 띤다. 문학의 경우 언어가 처음부터 ‘허구적’(fictive)한 대상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철학과 역사는 그렇지 않다.

 

자연과학 텍스트의 대상이 자연 혹은 물리적 현상인 반면, 인문학 텍스트의 대상은 인간의 다양한 사유와 경험, 사건들이다. 또, 자연과학에서는 ‘법칙정립적’인 반면, 인문학은 법칙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경험이나 사건을 ‘서술’하거나 검토하면서 ‘이해’하고 그 뜻을 밝히는 ‘개성묘사적[사례기술적]’인 특성을 갖는다. 오류.

 

 사회과학의 경우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중간적 위치로서 그 위상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

 

 

3. 인문계 텍스트의 독서 구조

 

텍스트의 언어적 의미

 

한 텍스트는 언어적 집합체이며, 언어적 의미(linguistic/semantical meaning)와 非언어적 의미(non-linguistic/non-semantical)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예를 들어 홍명희의 󰡔임꺽정󰡕은 문자적 의미 외에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텍스트의 언어적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결정하거나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으로 ‘용도’(use)를 제시했지만, 이 경우에도 결국 구체적인 용도를 파악해야 한다.

 

언어의 의미는 다양하며, 언어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된다. 이를 편의상 서술적(descriptive), 정서적(affective), 처방적(prescriptive) 기능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서술적 기능이란 객관적 사실의 기록을 말하고, 2) 정서적 기능은 주관적 감동을 말하며, 3) 처방적 기능은 타인에게 어떠한 행위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각각의 경우 언어의 의미는 1) 언어가 지칭하는 ‘객관적 대상’, 2) 언어가 야기하는 ‘인과적 효과’, 3) 언어가 주는 ‘행동의 규제’가 된다.

 

자연과학 분야의 텍스트는 주로 언어가 서술적 기능을 한다. 반면, 인문학 분야의 텍스트에서는 언어가 주로 표현적 기능과 처방적 기능을 한다. 그 점에서 인문학 텍스트의 기능은 자연과학 텍스트와는 달리 복합적 기능을 동시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문계 텍스트의 언어적 의미

 

인문학 텍스트의 대상은 자연 현상[현실대상]이 아니라 무엇인가의 ‘의미’ 혹은 ‘관념’[사고대상]이다.

 

문학에서 어떤 자연 현상이나 인물, 행동을 묘사할 때 그 의도는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내포(內包)하는 정서적, 도덕적, 사회적, 역사적, 기타 非언어적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독자의 감동을 자극하여 독자를 어떠한 방향으로 유도(誘導)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학 텍스트는 물리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나 행동 등을 묘사한다. 그러나 역사학 텍스트에서 관심이 있는 것은 그러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일회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내포된 非언어적인 ‘의미’와 ‘의의(意義)’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문학적 ‘역사학’은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과학’과는 구별된다.

 

 즉, 인간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알아내고 삶의 형이상학적‧종교적 의의를 찾아냄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역사학 텍스트의 기능 역시 문학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서술적이라기보다는 표현적‧처방적이라 할 수 있다.

 

철학 텍스트의 경우에도 정신적 산물인 관념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역사나 문학 텍스트와 동일한 대상을 갖는다. 철학은 현실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철학은 관념적 존재와 정신적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이를 통해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신념이나 따라야 할 사고의 논리를 가르쳐주고자 한다. 그 점에서 철학은 결국 (정치적) ‘입장’임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철학 텍스트는 철학자의 주관적 태도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처방적 기능을 한다.

 

이처럼 인문학 텍스트의 표현적, 처방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연과학 텍스트를 대하듯 읽는다면 필연적으로 오독(誤讀)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인문계 텍스트의 난해성

 

상대적으로 명확한 자연과학의 대상과 달리 인문학 텍스트의 대상은 명확하게 결정되기 어렵고, 텍스트의 의미 또한 서술적인 것이 아니라 표현적‧처방적이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첫째, 표현적‧처방적 의미는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의미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또, 표현적‧처방적 의미의 강도에 따른 질적 차이 또한 판단하기 어렵다.

 

둘째, 인문학 텍스트에서 한 낱말이나 문장은 그와 관련된 주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특히, 문학 텍스트에서 언어는 언제나 다의적(多義的)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의미가 애매모호하며 복잡하다.

 

셋째, 인문학 텍스트의 의미는 독자의 지적‧경험적 배경과 세계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며, 사회적, 역사적, 실존적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두고 수백 년에 걸쳐서 연구와 토론,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문학 텍스트의 언어적 의미의 가변성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넷째, 칸트의 혁명적 발견을 통해 알게 되었듯이, 객관적 대상으로서 현상이 우리에게 인식될 때 그 모습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선험적 구조(transcendental categories)에 의해 조작(造作)된 것이다. 이는 헤겔에 의해 비판받는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비판한다. 자연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원초적 지각(知覺)조차도 이론 의존적이라는 심리학적 발견과, 과학 이론이 패러다임에 의존한다는 토마스 쿤의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호 역시 사물 현상과 마찬가지로 선험적 틀을 전제로 한다. 기호는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언어의 의미는 문법론(syntactics), 의미론(semantics),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 언어의 사회적 사용과 기능에 관한 규칙.의 세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려할 때에야 비로소 파악될 수 있다. 즉, 한 낱말은 문법적 구조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다른 낱말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그것을 이해하는 인간의 의도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법적, 의미론적으로 동일한 텍스트라 할지라도 화용론적 입장에서 독자의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문학 이론과 문학 비평에 관한 논쟁은 인문학 텍스트의 위와 같은 성격을 잘 보여준다. 형식주의 비평, 심리학적‧정신분석학적 비평, 현상학(現象學)적 비평, 구조주의적‧기호학적 비평, 역사주의 비평, 마르크스주의적 비평, 이념적 비평, (독자의 반응으로서) 독서 이론, 페미니즘 비평, 해체주의 비평 등은 문학 작품 해석에 대한 다양한 패러다임들의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문학 텍스트의 난해성(難解性)이 텍스트의 유일하고 객관적인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논의하는 난해성은 독자의 지적 미숙함과 부주의에서 비롯하는 오독과 난해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텍스트 자체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을 말한다.

 

 

4. 정독과 오독

 

정독(精讀), 정독(正讀), 오독(誤讀) 개념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독(精讀)이란 텍스트의 객관적 여건과 독자의 지식을 동원하여 텍스트의 의미들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정독을 한 이후에도 텍스트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의미를 결정할 수 없거나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텍스트의 의미는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 의미를 찾아내는 독서가 바로 정독(正讀)에 해당한다. 이 경우 정독은 ‘권위 있는’(authoritarian) 독서를 가리키며, 나머지 해석은 오독(誤讀)으로 간주하게 된다. 즉, 오독은 정독(正讀)과 상반되는 개념이며, 착실하게 읽음을 의미하는 정독(精讀)과는 배치되지 않는다.

 

한편, 단 하나의 정독(正讀)만 가능하지 않다는 (해체주의적) 입장과 관련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만약 모든 해석이 동일한 비중을 갖는다면, 텍스트의 의미 선택은 완전히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독서란 비합리적인 행위이기만 한 것인가? 아니면 텍스트의 비합리적인 의미 해석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잇는 바람직한 독서의 방법과 기술은 없는가?

 

5. 독서 예술

 

프로타고라스, 칸트, 니체, 쿤이 지적했듯이 모든 인식이 선험적 인식의 틀을 전제로 한다면, 독서라는 인식 행위 역시 그것만의 인식틀을 전제로 한다. 이때, 텍스트의 의미 해석에 전제된 인식이 보편적, 절대적인 인식틀을 가질 수 없고 독자가 다양한 인식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해서 독서 행위가 필연적으로 무정부적이며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인문학 텍스트를 읽는 바람직한 태도와 방법과 관련하여 다음 사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 텍스트의 의미가 단선적(單線的)이지 않으며 무한히 다양하고 풍부함을 인정할 때, 독서를 통해 이러한 의미를 가능한 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텍스트의 정독(精讀)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독이란 상세한 의미를 빠뜨리지 않고 찾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독자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는 특정한 분야의 경험과 지식만 갖추면 되는 자연과학 텍스트의 독해와는 다르다.

 

둘째, 하나의 해석과 그 해석의 절대적 객관성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진위(眞僞)에 대한 양분은 불가능하며, 설득력(說得力)의 유무와 관련한 개연성(蓋然性) ‘아마도 그러할 것으로 생각되는 성질’이라는 뜻의 개연성은 필연성(必然性)과 반대되는 의미를 갖는다.

과 관련한 논의만이 가능하다. 이처럼 텍스트의 의미 해석 행위에 해당하는 인문학 텍스트의 독해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예술적 행위에 속한다.

 

셋째, 분석적 성격을 띠는 과학과 달리, 예술은 종합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과학의 분석 역시 ‘분석의 종합’을 전제한다.

 예술은 유기적 전체성에 의한 이해를 지향하며, 이를 통해 인식 대상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감상(感想)하고자 한다.

결국, 인문학 텍스트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그 텍스트의 의미를 다양성의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텍스트의 전체적 의미를 독자의 지식과 경험의 총체에 해당하는 ‘세계관’에 비추어 파악하고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필요하다면 그처럼 흡수된 텍스트의 의미에 비추어 언제라도 기존의 세계관을 새로운 것으로 바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6. 다독과 정독

 

인간은 능력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너무나 유한한 존재다. 따라서 이러한 제약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독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한편으로는 고전과 그렇지 않은 텍스트 사이에서의 선택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다독과 정독 사이의 갈등이기도 하다.

 

먼저 책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흔히 어떠한 책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관습적으로 고전이 언급된다. 그러나 고전으로 뽑히는 작품만 하더라도 그 수가 너무 많고, 어떤 것을 고전으로 보느냐도 시대, 문화,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오직 고전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시간, 장소에서 만들어진 텍스트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즉, 이러한 텍스트를 통해 먼저 독서 훈련을 한 뒤 고전을 접하는 것도 바람직한 독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독과 정독 중에서는 어떠한 방식의 독서가 바람직한가? 대부분의 경우 다독보다는 정독을 권유(勸誘)한다. 그러나 사람의 기질, 독서의 목적, 텍스트의 분야에 따라 독서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절실한 지적 관심과 관련된 텍스트부터 선택하여 시작하고, 자신이 느끼는 필요성에 따라 다독과 정독을 경우에 맞게 채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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