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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by For Your Life 201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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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가와 에미,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놀, 2016.


별점: 3

한줄평: 플롯에 탄탄하진 않지만 시의적절한 소재(이직, 퇴사, 경제위기)를 포착한 책. 다만 문제의 해결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는 한계가 있음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국내도서
저자 : 기타가와 에미 / 추지나역
출판 : 놀(다산북스) 20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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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192-193.

  "무슨 생각을 해?"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려 보니 야마모토는 평소 얼굴로 싱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저기, 불러내 놓고 미안한데..."

  나는 조금 긴장하며 말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줘."

  "나야 괜찮긴 한데, 무슨 일이야?"

  "아니, 대단한 일은 아닌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숨을 들위시고 나서 웃는 얼굴로 똑 부러지게 말했다.

  "지금 회사 좀 관두고 올게."


pp. 195-198.

  부장이 충분히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저는 오늘로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나의 후련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부장의 표정은 무척이나 갑갑했다.

  "하! 그러니까 요새 놈들은 쓸모가 없는 거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눈곱만 한 자긍심도 없지! 평생 패배자로 살아도 되나! 넌 정말 싸구려 인생이로군! 아무 일도 안 해 놓고 그만둘 거면 월급 도로 뱉어! 회사에 손해나 끼치고! 배상해! 소송하겠어. 이 도둑놈아! 다들 죽기 살기로 일하는 와중에 잘도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러고도 인간이냐!"

  입에서 온갖 말을 뱉어 내면서 미친 것처럼 짖어 대는 부장을 나는 용케 계속 숨을 쉬는구나, 감탄하면서 바라보았다.

  부장이 말을 전부 마치고 숨을 헉헉거리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인간의 마음이 없는 놈에게 인간이 뭔지 설교를 들을 생각은 없는데."

  부장이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기괴한 소리였다.

  "소송 걸 거면 거세요. 저도 지금까지 한 불법 노동이 산더미 같으니까요. 법정에서 잘잘못 한번 따져 볼까요? 사원을 부속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회사에 더 이상 볼일 없습니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나에게 부장은 더 소리 질렀다.

  "너는 사회를 몰라! 이런 일로 좌절하는 놈은 말이지, 살면서 뭘 해도 글러먹게 돼 있어!"

  호흡 곤란 직전까지 몰리면서도 어째서 저렇게 외치고 싶은 걸까.

  게다가 생판 모르는 남이 내 인생에 대해 왜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걸까.

  내 인생에 참견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뿐이다.

  기어코 나에게도 분노가 부글부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입을 다물자 겁먹었다고 착각했는지 부장이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얼굴로 지껄였다.

  "어차피 너 같은 놈은 평생 패배자로 끝나는 거야!"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내 인생을 댁이 이러쿵저러쿵하지 마!"

  내 고함에 부장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내 인생은 댁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단 회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야. 내 인생은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라고!"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이 사람이 정말 불쌍해서 마음이 아파졌다.

  "패배자. 패배자. 대체 뭐에 졌다는 거지. 인생의 승패는 남이 결정하는 건가요? 인생은 승패로 나누는 건가요? 그럼 어디부터 승리고 어디부터 패배인데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는 이 회사에 있어도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둡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이직률이 높은 회사가 계속 버틸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나요? 참고 또 참다가 도산해서 퇴직금도 못 받으면 아무리 후회해도 모자라요.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회사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나 때는 이랬으니 너도 이래라'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반드시 변화해야 합니다. 사람도 제도도 변화해야 한다고요."

  다소 흥분이 가라앉은 부장이 숨을 고르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만두고 간단히 다음 직장을 구할 것 같나. 인생은 그렇게 쉽지 않아."

  나는 부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간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간단하면 안 되죠. 저는 이 회사를 너무 간단히 골랐어요. 시간이 걸리는 게 무서웠고, 날 받아 주는 회사라면 어디든 좋았어요. 하지만 직장을 그런 마음으로 결정하면 안 되는 것이었어요. 다음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예요.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요. 사회적 지위 따위 없어도 돼요. 설령 백수로 살더라도 마지막에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만한 길을 찾아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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